안녕하세요. 보표레터 구독자 여러분.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잘 보내셨는지. 저는 시애틀이라는 도시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왔죠. 마치 빌려온 책을 제자리에 꽂아두는 것 같은, 그런 당연하고도 약간은 낯선 감각과 함께 말입니다. 지난 65호 레터에서는 출장을 떠난다는, 어딘가 거창한 포부를 남겼던 것 같은데, 무사히 돌아와 다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새삼스레 기쁜 마음이 듭니다.
산다는 건 때로 아주 사소한 일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저에게는 작지만 확실한 기쁨의 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1년 만에 다시 찾은 시애틀의 공기는, 뭐랄까, 잘 닦아놓은 유리잔처럼 투명했습니다. 1년 중 가장 좋은 날씨를 선물한다는 9월의 시애틀은 과연 그랬습니다.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은, 결국 누구와 함께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색채가 결정되는 법입니다. 2019년, 저는 아마존에서 물건을 팔기 시작했고, 어쩌다 보니 '셀러킹덤'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애틀의 공기를 함께 들이마신 사람들은 바로 그곳에서 만난 이들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오너이기도 하고, 한국의 셀러이기도 한 사람들이었죠.

솔직히 말하자면, 한때 저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꽤나 지쳐 있었습니다. 뉴욕에서의 이민 생활과 오랜 직장 생활은 제 안에 있던 무언가를 조금씩 마모시켰고, 관계라는 것에 대한 피로감만이 옅은 먼지처럼 쌓여갔습니다. 그러다 아마존 셀러라는 일을 우연히 시작했고, 곧이어 팬데믹이 왔습니다. 덕분에, 혹은 탓에, 2~3년은 거의 사람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내 30대의 달력에서 3년이라는 시간이 텅 빈 페이지처럼 뜯겨져 나간 셈입니다. (사람은 확실히 없었습니다. 마음은 한동안 편했다는것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팬데믹의 끝이 보일 무렵에도, 저는 여전히 망설였습니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야만 하는 걸까. 사람들은 서로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이용하고, 결국에는 닳아버린 건전지처럼 버려지는 건 아닐까. 그런 소모적인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사람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열어둔 창문으로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날아들어온 것처럼, 그 생각이 내 머릿속에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누구나 인생에는 가끔 그런 날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날이 제게는 그런 날이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아마존 셀러 컨퍼런스를 열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교류의 폭을 넓혀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른 겁니다.
커뮤니티라는 것도 오래된 위스키처럼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라는 운영자의 빛깔과 결이 맞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남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서히 나뉘어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누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저 주파수가 다른 라디오 같은 것이겠죠. 그래서였을까요. 이번 시애틀에서의 시간은 유난히 편안하고 좋은 공기로 가득했습니다.
문득 그런 상상을 해봅니다. 언젠가 이 레터를 읽는 여러분과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는 시간은 어떨까. 올 11월, 저는 한국에 갈 일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때가 저희의 우연한 만남을 위한 좋은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오늘의 레터를 보냅니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편지이지만, 그만큼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